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혜화동 성당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혜화동 본당은 1936년 3월 수품 사제 심재덕 마르코 신부를 시작으로 2023년 2월 수품 사제 강동휘 사도요한 신부까지 성직자 36명을 배출하였다. 제12대 [[서울대교구]]장 [[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]], [[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]]의 정신적 지주로 잘 알려진 [[원주교구]] 원로사목자 [[신현봉]] 안토니오 신부, 제6대 [[춘천교구]]장 [[장익 십자가의 요한]] 주교[* 아버지인 [[장면]] 전 국무총리도 바로 이 성당에서 사목회장을 지낸 바 있다.] 등이 혜화동 본당 출신이다. [[혼인성사]] 장소로 꽤나 인기가 있다. 성미술품으로 가득 찬 성당 내부가 매우 아름답고 지어진 지 시간이 꽤 흘러 분위기도 있는 데다가, 도심에서 가깝고 [[지하철]][* [[서울 지하철 4호선]] [[한성대입구역]]과 [[혜화역]]에서 아주 가깝다.]을 이용하기도 불편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.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다 보니 이곳에서 혼인 미사를 드리려면 적어도 몇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. 예약 일정은 성당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. 오랜 전통을 가진 성당이어서인지, --미사 중 신앙 고백으로 [[니케아-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]]을 하는 것--, [[미사/성찬 전례|성찬 전례]] 중 [[미사/성찬 전례#무릎 꿇는 행위를 보존해야|장궤를 하는 것]] 등 원칙에 충실한 면을 볼 수 있다. [[서울특별시|서울]]과 같은 대도시에서 [[삼종기도]] 시간에 치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. 성당 바로 앞 길이 편도 3차로의 큰 길로 하루 종일 차가 다니는 대로이고, 주변에 가정집이 없기 때문에 종소리가 소음 공해라는 시비에서 자유롭다. 2017년 8월말에 대대적인 바닥공사와 천장공사를 하여 낡은 바닥 타일과 천장을 새 것으로 교체하고, 천장에 거대한 원 모양의 [[샹들리에]]를 설치하여 비교적 어두웠던 성전 내부 분위기가 밝아졌다. 또한 [[엘리베이터]]가 설치되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다니기에 편해졌다. [[성균관대학교]]가 가까이에 있는데, 이 영향으로 성대는 천주교 교세가 강한 편이며 학생들이 성당에 오고는 한다. [[장면]] 박사와 [[탁원제]] 성우가 사목회장을 지냈다. 주일 [[미사]]에는 한국인 신자들뿐만 아니라 [[필리핀인]] 신자들도 많이 온다.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산하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[[필리핀]] 공동체가 있는데, 여기에 소속된 필리핀인들이 이 혜화동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 때문이다. [[http://www.seoulmigrant.net/load.asp?subPage=311|공동체 소개]] 성당 인근의 혜화동 로터리에는 필리핀인들이 여는 길거리 시장이 열리며, 성당 건너편 [[우리은행]]이 유일하게 필리핀인들을 위해 주말에도 영업한다. 여기 필리핀 공동체에 소속된 필리핀인들은, 교적과 상관없이 이 공동체 소속으로 혜화동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. 이는 명동성당 영어미사 커뮤니티도 마찬가지. 다만 교적 자체는 본인 관할 성당에 둬야하며 판공성사는 본인 관할 성당에 내야 한다. 성당의 길 건너편에는 교육 회사인 [[재능교육]] 본사가 있는데, 재능교육의 노조는 2,000일이 넘는 긴 시간을 교사들의 권익 증진을 위해 농성을 벌여온 것으로 유명하다. 이 때 노조원들이 본사 건물은 물론이고 성당 앞에서 천막을 치거나, 아예 성당의 종탑까지 올라가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. 이 때문에 성당 측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섭 중재를 행하기도 했다. [[분류:한국 천주교 성지]][[분류:한국 천주교 성당]][[분류:천주교 서울대교구]][[분류: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]][[분류:근대건축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